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눠라.
나를 대하듯 남을 대하라.
모두에게서 배울 점을 찾아라.
사람을 판단하지 말아라.
불편함을 감수해야 성장한다.
남을 판단하지 말아라.
파주에서 지낼 때만 해도 내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었다.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는 문장들에 때론 감탄하며 밑줄을 좍좍 긋고 내 생각을 적어놓기도 했다. 그 순간은 참 평화로웠다. 글을 읽는 것만으로 그런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. 문장들을 삶으로 살아내지 않으면서 착각을 하던 그 시기에 나는 참 오만했다. '맞아. 저렇게 살아야지.' '맞아. 저렇게 살면 안되지.' 하며 은연 중에 누군가를 판단했고, 그 잣대를 나에게는 들이대지 않았다. 나는 이미 문장대로 산다고 착각했던 모양이다.
책이라는 것에만 빠져 세상에서는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던 나는 어렵지 않은 '읽기'에만 집중했다. 책에서 말하는 문장대로 살려면 어려워야 하는데 나는 그 과정을 거치지 않았던 것이다. 목포에 와서야 그 어려움을 조금씩 겪어냈다. 혼자 편하게 있고 싶은데도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려 애쓰고, 먼저 말을 거는 게 눈치 보이는데도 용기내어 말을 붙였다. 상대에게 깊은 관심은 없는 게 디폴트이던 내가 그 사람의 관심과 필요가 주의를 기울이려 노력하기 시작했다. 처음으로 나를 조금은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 것 같다. 그저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매일을 꽃 밭 속에 살던 사람이 지금은 매일 조금씩 노력해서 변화하려는 사람이 되었다.
변화하는 걸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건 인간의 종특인데 왜 나는 변하려고 하는 걸까? 자문해봤다. 그 변화의 과정이 불편하고 어렵지만 결국은 그게 내 본성에 더 들어맞기도 하고, 그게 더 좋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다. 혼자 밥을 먹는 것도 편하고 좋지만 사실 다른 사람과 대화하며 식사를 하면 그 시간이 더 즐거울 수도 있는건데 이전의 나는 그 가능성을 아예 차단했었다. 아직까지 그런 면이 있기도 하다. 내가 좋아하고 종종 하는 말이 "사람은 현재 삶, 혹은 현재의 모습에 너무 쉽게 만족해서 그 이상의 것(천국)을 보지 못한다." 인데 정작 내가 현재 모습에 너무 만족하며 살아온 것 같다.
이전에 규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. "사람들을 변화시키려고 하기 전에 너부터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(행동)하라"고. 그땐 또 "와아- 와아-" 연신 감탄하며 동의를 했는데 그렇게 또 그냥 넘기며 살아왔다. 내가 금방 잊을 것도 예측한 규리는 나를 참 잘 안다. 어쩔때는 나보다 더. 시간을 따로 두어 내 자신이 변화해야 할 점을 생각하지 않는 나에게는 상황에 직접 부딪혀서 그 경험을 하는 것이 잘 맞는 듯하다. 규리의 글을 읽으면 규리는 자신에 대해 객관화하고 자신을 잘 살피려는 사람인 게 자주 느껴졌는데 그 능력이 본인을 힘들게 할지라도 부러운 능력이다.
여전히 변화하고 책의 문장을 삶에 적용할 게 많다. 그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도 경험으로 안다. 그래도 그 과정이 나를 더 자유하게 하고 사랑 안에서 숨쉬게 하기에 기꺼이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. 현재의 편안함, 생각, 행동에 너무 자족하지 않고 언제든 변화하는 것에 열려있는 사람으로 하루를 살고 싶다.